인생에서 의미와 질서와 통제력을 찾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 환경에 질서와 체계를 부여한다. 즉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반응하다보면 경험이 쌓이고 개별 사건에서 패턴을 찾아 심성 모형(믿음)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진화 과정에서 위험과 기회는 수식간에 닥쳐왔고, 우리는 이를 겪으며 놀라운 사건이 발생할 때 빠르게 믿음을 형성하는 경로를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폭우가 내리면 산비탈에 땅이 패여 수로가 생기면서 물이 흘러 내려간다. 이후에 내리는 비는 자연이 만든 수로를 따라 자동으로 내려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과 정보도 믿음이 형성한 패턴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그 길을 더 깊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대게 무의식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인생에서 의미와 통제력을 추구하며 믿음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품고 있다. 우리 자신은 복잡하고 모호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믿음은 개별 경험에서 패턴을 찾아내어 그것을 통해 형성된 심성 모형으로, 이 과정은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는 위험과 기회를 직면하면서 빠르게 반응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사건에 즉각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믿음을 형성하는 경로가 발전한 것이다.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위협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회피함으로써 믿고 싶은 현실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확증하는 정보만 선택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정보를 잊는 데 매우 능숙하다. 개인적인 철학이나 경험과 일치하는 정보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기 행동과 믿음을 정당화하는 정보만 선별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은 일종의 내부 "지침"과 같은 역할을 하며,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사건을 해석하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어떤 사건에 특정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도 바로 이 믿음에 의해 지시를 받기 때문이다. 믿음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여 안정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해주며, 우리에게 사건을 해석할 틀을 제공해 혼란을 줄이고 일관성을 유지하게 한다.
사람들은 대게 새로운 정보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증해주는 정보를 원한다. 연구에 편견이 개입되지 않도록 특별히 훈련받은 과학자들조차 편견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뒤통수를 보려면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확증편향 역시 알아차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거울 하나만 가지고는 자기 뒤통수를 볼 수 없다. 두 개의 거울이 있어야 하고, 주의를 기울여 거울의 위치를 조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편견을 알아차리는 것 또한 뒷통수를 보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확증편향에 취약하므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보다 이미 알고 있거나 믿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정보를 더 선호한다. 이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인데, 새로운 정보는 기존의 믿음을 흔들거나 재조정해야 하므로 불편함을 줄 수 있다.
심지어 과학자들처럼 편견을 줄이기 위해 훈련받은 사람들조차도 확증편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편향을 극복하려면 자신이 가진 믿음과 가정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자신의 뒤통수를 보려면 두 개의 거울을 사용하고, 각도를 조정하는 주의와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확증편향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여러 방면의 시각과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편향에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아니, 싸워야만 하는가? 더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싶다면, 먼저 편향이 본능적으로 인간의 인식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편향과 싸우는 일은 본능에 반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믿음은 우리를 고유한 존재로 만들어주지만, 이러한 고유함은 종종 증거가 빈약한 빠른 판단에서 비롯된다. 사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고유함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믿음 체계는 때때로 객관적 진실과 다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안정감과 의미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믿음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 질서와 해석을 제공하여, 우리를 혼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강력한 심리적 도구인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증거로 이 결론에 다다랐다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믿음이 먼저고 증거는 나중이다. 다른 사람의 편향을 발견하기는 쉽지만, 자신의 편향을 발견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을 집중해 우리 안에 있는 편향을 찾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의식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고, 그러한 경계심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 의식적인 노력은 매우 귀중한 자원으로 위험이나 기회를 찾아서 전략적으로 피하거나 접근할 때 쓰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것의 대부분은 부정확할지라도 문제없이 기능한다. 만약 본능에 맞서 믿음을 성찰하고자 한다면 성찰 자체도 편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기능적인 믿음을 유지하기 위한 튼튼한 뼈대를 가지고 있다. 편향에 맞서 싸우는 것은 반직관적인 행동이지만, 이러한 시도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도와준다. 편향과 싸우는 것은 힘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지닌 세계관은 개인적인 관점과 역사와 경험 그리고 다른 곳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이 합쳐져 형성된 한 가지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믿음은 매우 모호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방법이다. 믿음은 행동 지침으로써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 덕분에 시간은 주체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또한 믿음은 내부 명령어처럼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려준다.
믿음은 무의식적인 감정을 이용해 우리에게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행동지침이나 사명선언문은 정신적 자원을 절약하면서 우리가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믿음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가진 믿음에 이름을 붙이거나 설명해 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믿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제력을 추구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핵심 동기다. 통제적 욕구는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다.
행동지침이나 사명선언문은 일상에서 우리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의사결정을 더 쉽게 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또한, 믿음은 우리가 명확히 이름을 붙이거나 인식하지 않아도 우리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며 행동을 이끈다. 인간은 통제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강력한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깊이 작용한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다고 믿는 것은 안정감을 주고, 이는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경험에서 비롯된 믿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그 믿음의 증거를 찾거나 만들어 안정감을 얻는다. 이는 과거에 생존을 위해 감각과 권위자의 지침을 신뢰했던 인간의 본능과도 연결된다. 불신은 이러한 본능에 반하는 행위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기에 본능적으로 기피되었다. 믿음은 우리가 충동적이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든 그 과정에서 방향성을 제시한다.
결국, 믿음은 우리 행동의 기초가 되어 삶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게 해주며, 복잡한 세상을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는 심리적 지주가 된다. 믿음을 통해 인간은 예측 가능성과 안정감을 확보하며,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게 된다. 개인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고 영향을 미치며 조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정신 건강에 이롭다. 우리는 믿음을 경험에 투사해 그 증거를 찾거나 만들어냄으로써 안정감을 확보한다.
경험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가 경험을 만든다. 믿음이 쉽게 형성되는 까닭은 우리가 감각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일단 믿고 보는 본성은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주변에 신뢰할 만한 권위자가 있던 과거에 생겨났다. 불신은 감각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행위였다. 믿음은 충동적으로 혹은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를 이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