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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영자

삶에는 조화의 철학과 창조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by 덕인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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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의 창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다루었고 철학과 과학의 경계 또한 살펴보았다. 그의 관심사에는 물리학부터 형이상학, 경제학, 정치학, 생물학, 동물학, 지리학, 기상학, 윤리학, 미학, 연극과 시, 음악, 수사학, 수학, 심리학 등이 포함되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가장 유명한 제자인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제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서 우리의 삶과 행복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그는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추구하며 행복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행복은 단순히 감정적 즐거움이 아니라, '탁월성'에 도달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실천하는 삶에 가까운 것이었다. ,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지혜와 덕을 실천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이론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단순히 물질적 성공이나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행복은 우리 존재의 본질에 충실하며, 인간 고유의 이성적 능력을 발휘할 때 가장 완전하게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며, 학문의 각 분야를 탐구했다. 그의 관심사에는 물리학, 형이상학, 생물학 등 많은 영역이 포함되었으며, 과학과 철학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보았다. 이러한 통합적 사고는 현대 과학과 철학의 기반을 닦았으며, 인류의 지식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이성적 판단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향을 설정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인생을 최고의 덕을 이루며 살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이를 통해 얻는 지속적이고도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것을 권장했다.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을 얻고 유지하고 다시 얻는 것은 항상 대부분의 사람들을 움직이는 비밀스러운 동기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 기뻐하는 사람이요,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인생에서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요,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행복 = 즐거움 + 의미,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행복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생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가장 강력한 동기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을 얻고 유지하는 일은 때로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진정한 행복은 단순히 바라는 것을 얻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만족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진정한 부유함이란 소유물의 양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는 마음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즐거움과 의미가 균형을 이루는 삶

인생에서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단순히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성취를 통해 진정한 즐거움과 의미를 찾고 그것을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단순한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의미 있는 가치를 발견할 때, 우리의 삶은 더 깊고 충만해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행복의 본질은 즐거움과 의미가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균형은 삶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즐기고, 자신의 행동이 가치와 의미를 담도록 하는 데서 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 있는 삶도 이와 일맥상통하는데, 자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타인과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삶이기 때문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은 인생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동시에 발견하고, 이를 통해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통해 우리는 행복을 단순히 한순간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꾸준히 추구하며 유지하는 가치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하고 싶은가? 행복하게 있으면 된다. 고통 받고 싶은가? 고통스럽게 있으면 된다. 하지만 한 번 뿐인 인생인데 고통스럽게 살 필요가 있는가? 행복으로 가는 길은 절대로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스스로 행복의 길을 찾고 최선을 다해 그 길을 닦아야 한다.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에 대한 이 메시지는 우리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결국 삶의 태도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행복의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을 발견하고, 그 길을 스스로 닦아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

행복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거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 자신을 넘어 타인의 행복을 바라보는 데서도 얻어질 수 있다. 자기 중심적인 행복 추구는 오히려 공허함을 남길 때가 많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삶 속에서 우리는 더 깊고 지속적인 행복을 찾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 있는 삶'이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먼저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가서 노숙인에게 점심을 대접하라. 그러면서 일주일 동안 카르마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주는지 느껴보라. 존중과 품위가 자연스럽게 함께할 것이다. 따라서 행복하고 싶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행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 우리가 타인에게 주는 행복과 선한 영향은 결국 자신에게도 되돌아온다. 고통을 선택하는 대신, 타인과 함께할 때의 기쁨과 만족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은 변한다. 생각은 일어나면 사라진다. 자기 생각에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 자기 앞 길을 믿고 원하고 개척하면 생각은 사라진다. 삼매에 들어가는 순간 세상의 근심 걱정은 어제 밤 꿈 속에 있다. 있을 때에 없는 것과 같고, 없을 때에 있는 것과 같다. 일어날 때에 안 일어나는 것과 같고, 안 일어날 때 일어나는 것과 같다. 자기 생각에 머물지 마라. 만족하는 재주를 얻어야 한다. 만족하는 능력 그것을 길러야 한다.   

생각의 본질과 삶에서의 태도를 깨닫게 하는 생각은 일시적이며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로, 일어나면 다시 사라진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의 흐름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길을 믿고 주도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의 길을 믿고 주도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

특히 "삼매"라는 경지에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마치 밤의 꿈처럼 느껴질 만큼 고요하고 집중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에서는 현재의 생각과 감정에 붙잡히지 않고, 마음이 자유로워지며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진정으로 만족하는 재주를 기르는 것은 일어나는 생각을 단순히 흘려보내며, 현재 상태에 감사하고 충만함을 느끼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외부의 조건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니고, 현재에 만족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만족의 경지이다. 자기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무쌍한 생각과 감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찾는 것이 중요한 삶의 자세이다.

살면서 세우는 목표는 다른 목표에 좌우되고 그 목표는 또 다른 목표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살면서 세우는 목표는 다른 목표에 좌우되고 그 목표는 또 다른 목표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사회와 쉽게 어우러지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만족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인가? 그러므로 공부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일의 목적은 무엇인가? 일은 자존감과 만족,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에게 일은 수입의 원천이라는 점에 가장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 또한 만족이나 돈 같은 다른 목표에 종속된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목표를 세우지만, 그 목표들은 종종 다른 목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공부를 예로 들면, 우리는 지식을 쌓는 즐거움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목적일 수도 있다. 공부는 한편으로는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큰 목표인 직업, 안정된 수입, 사회적 지위 같은 것에 종속되기도 한다.

일의 목적도 복합적이다.

마찬가지로 일의 목적도 복합적이다. 일은 우리가 삶에서 자아실현을 이루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일은 주로 수입의 원천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이는 삶을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일 자체보다 그 결과에 더 중점을 두게 된다. 결국, 일 또한 만족, 자존감, 경제적 안정이라는 더 큰 목표에 종속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우는 목표들은 궁극적으로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질문이 생긴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모든 목표를 이루려 하는가? 아마도 우리는 행복이나 삶의 의미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목표와 수단을 구별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에 집중할 때, 우리의 삶은 더 명확하고 의미 있게 느껴질 수 있다.

인생이란 자기를 바람직한 모습으로 혁신하는 것

행복은 마치 나비와 같아서 쫓아가면 멀리 날아가버리지만 주의를 돌리면 가만히 다가와서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행복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토대로 어떻게 살 것인가? 삶에는 조화의 철학과 창조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행복은 자주 우리가 직접적으로 추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우리 삶의 태도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통해 스며드는 경우가 많다. 마치 나비처럼 직접 잡으려 하면 멀어지지만,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오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도울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사랑과 배려의 태도는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오게 된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목표로 하기보다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 그 행복이 우리의 삶에도 잔잔히 찾아올 것이다.

인생지도 삶의 8진법 진리 1 가정적으로 행복한 삶,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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